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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15 :: 히가시노 게이고 <비밀>
<비밀>은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동명 영화를 봤던 덕분에 대충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화면이 아닌 글을 통해 읽는 <비밀>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건조하면서도 충실한 문체로 써내려간 두 권 짜리 소설 <비밀>은 영화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보다 훨씬 어린 나이로 처음 등장하는 딸 덕분에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소설 속의 시간이 훨씬 길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딸이 겪는 중요한 사건 자체는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영화보다 훨씬 세밀하고도 밀도 있는 묘사는 책이 가진 무한한 공간 덕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의 심리가 때로는 은근히 때로는 직설적으로 드러남으로써 감정을 이입하기에도 쉬웠다.
반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비밀'을 독자에게 내놓는 방식은 별로였다. 추리소설의 예를 들자면, 추리소설의 핵심인 트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는 '그럴 수 밖에 없어야 한다'는 개연성이다. 모든 가능성을 제외하고 남은 단 하나의 진실. 그게 바로 트릭이다. 물론 <비밀>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가 단 하나의 '비밀'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의 트릭처럼 논리에 맞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비밀' 자체가 주는 배신감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어째서 주인공이 '비밀'을 '이런 방법'으로 알아낼 수 밖에 없었냐는 점에는 의문이 남는다.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조금 다른 형식으로 표현된 소설에서 더 큰 실망감을 느꼈다.
내가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이 <백야행>과 <브루투스의 심장> 밖에는 없어서 '이 작가는 원래 그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비밀>의 결말의 배신감은 <브루투스의 심장>의 결말이 주는 허무함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적어도 <브루투스의 심장>의 결말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고 또 결국 그렇게 되었다. 다른 결말을 기대하고 읽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기분은 조금 더럽더라도 결국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다. 그런데 바로 그 논리가 <비밀>에는 없다.
결말 부분 뿐만 아니라 이야기 중간중간마다 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우리와 일본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생소함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물음표를 떨어쳐낼 길이 없어 찝찝했다.
이런 점들이, 소설 중반부까지의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내가 <비밀>을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다.
<비밀> (전 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창해 펴냄, 1999년
2010년 11월 2일부터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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