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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의 영향을 타고 요즘 날개돋힌 듯이 팔린다는 바로 그 책이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하고 보니 10월 5일에 1쇄를 찍었는데 내 손에 있는 이 책은 10월 31일에 찍은 31쇄다. 하루에 여러 쇄를 찍은 날도 있다는 얘기다. 정말 잘 팔리긴 하나보다.
말 잘하는 김어준 총수가 풀어낸 얘기를 균형 잡힌 인터뷰어 지승호씨가 정리했다. 구어체로 적힌 글은 총수의 '음성지원'이 귓속에 울릴만큼 잘 읽힌다. 읽다보면 '나는 꼼수다' 방송을 듣는 것처럼 문자들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덕분에 책을 읽는 기분이 아니라 책장에 넣어뒀다 생각날 때 꺼내 읽는 만화책 같은 느낌이었다.
한정된 지면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막 시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예상 독자에 대한 배려일까. 깊게 파고 들면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는 쉬운 언어로 대충 풀어내곤 얼른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덕분에 이런저런 정치적 이슈들에 이미 익숙하다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책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사안 별로 따지자면 공감하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미 '나는 꼼수다'를 통해 소개된 내용이 많아 새롭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다만, 세상을 보는 하나의 시선, 즉 총수가 가진 문제의식을 비교적 쉽게 밝혔다는데서 이 책의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총수의 문제의식을 정신없는 팟캐스트 방송이 아닌 지면을 통해 공유해보고, 자발적인 판단을 거쳐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 수 있다면 분명 의미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사실 책 자체만 따지자면 내 돈 주고 구입한 걸 쬐끔 후회하기도 했었다. 그래도지금까지 '나는 꼼수다'를 재미있게 들었으니 그 청취료를 낸 셈 치고 덮어두기로 했다.
<닥치고 정치>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푸른숲 펴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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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책을 안읽었던 건 아닌데 글쓰기를 소홀히 했었다. 덕분에 블로그는 완전히 폐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조금씩은 살려내야 할 것 같아 오랜만에 키보드 글쇠를 두들겨본다.
2008년 5월, 군대에서 자대 배치 후 첫 외출을 부여받았었다. 첫 외출의 목적지는 부대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던 공공도서관이었다. 그때부터 대학 4년 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고전 탐독이 시작됐다.
특히 철학 고전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아직은 동양고전에는 손을 못대고 서양고전만 읽어오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고 키케로,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를 넘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까지 읽었다. 그리고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마주했을 때의 그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읽기는 힘들었다. 한 문장을 몇 시간씩 붙잡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덕분에 모든 사물을 나름의 모델링을 통해 수식과 그래프로 단순화시켜버리던 이 멋진 공학의 관점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칸트와 쇼펜하우어 만큼이나 기대했던 니체에 이르렀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도덕의 계보학>을 읽기 전, 니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니체 입문서가 이 책이었다.
지금까지 서양철학사를 훑어온 과정은 벽돌을 쌓아 건물을 짓는 것과도 같았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서로의 사유를 내세우며 위대한 철학의 신전을 쌓아올려왔다. 마침내 칸트의 시대에 이르러, 그가 신전에 지붕을 씌우고 쇼펜하우어가 벽면에 조각을 함으로써 철학이라는 건축을 완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니체는 그 모든 것들을 깨부수기를 명령한다. 세상에 보편적인 잣대란 없다. 역사 속의 위인들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존경의 대상이며 나아가 파괴의 대상이다. 청출어람. 니체는 그들을 짓밟는 대신 그들보다 한단계 더 성숙한 인간이 되라고 말한다.
철학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자. 철학은 자유로운 학문이다. 하지만, 자유를 추구한다면서도 철학은 이성, 오성, 인식 같은 딱딱한 언어 속에 스스로를 옭아맨 것이 아닐까. 이제는 사유를 둘러싼 저 벽을 허물어내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진일보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 그리고 새로운 인간이 되자. 이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니체로부터 전혀들은 단 하나의 메세지이다.
아직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도덕의 계보학>을 읽지는 않아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 책 전반에 걸쳐 니체의 사상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 판단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향을 잡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방향타가 될 수 있겠지만, 스스로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생각을 틀에 가둘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읽은 니체는 스스로 찾아가기를 주문하고 있다. 입문서, 그리고 니체를 깨부수고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나귀제를 준비할 것인가. 선택은 나의 몫이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 그린비 펴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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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연초에 일주일 정도 잡고 읽으려고 골랐던 책인데 읽다보니 너무 오래 걸렸다. 회사일이 쉼 없이 쏟아지던 시기라 출퇴근길 버스에서 대여섯쪽, 퇴근하고 집에서 또 몇 쪽. 그렇게 읽다보니 다 읽는데 한달 반이나 걸렸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그 무엇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책 읽는 시간을 줄여가며 이렇게들 아둥바둥 살고 있을까. 충분한 결혼자금과 노후자금을 저축하는 것, 세계적인 기업의 임원이 되는 것, 많은 특허와 논문을 써서 명예를 얻는 것, 그 무엇도 답은 아니다. 이들은 단지 삶을 위한 수단이며 필요조건일 뿐, 목적이나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실상 내 삶은 분명한 목적의식 없이 수초처럼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가하면 한밤중에도 별조차 볼 수 없는 이 도시는 얼마나 삭막한가. 창 밖을 내다보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 부적절한 것들이 가득 차 있다는 걸 항상 느낀다. 숨을 쉬어도 상쾌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맨발로 흙을 밟아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오랫동안 앓아온 천식과 아토피성 피부염도 전형적인 도시병 중 하나가 아니던가.
도시가 주는 편리함은 사실은 허구며 환상이다. 빛나는 네온사인들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숙면을 방해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문화생활이 편리하다고는 하지만 일에 쫓기다보면 1년에 책 몇 권, 연극 한 작품 감상하기도 쉽지 않다. 식료품 구입이 편리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숨이 끊긴지 오래된 시체들 아니던가.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도시가 줄 수 있는 이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에 도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시 속의 도시민은 단지 도시에 종속되어 있을 뿐인 까닭이다.
<월든>은 도시를 떠나 문명을 내려놓은 삶이 얼마나 충만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월든 호숫가의 정경을 이끼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묘사하며 목적의식과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소로우의 글에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벅찬 감정을 느낀다. 소로우는 최소한의 문명만으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그리고 문명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자연의 위대함을 말한다.
실상 문명의 빈 자리라는 것도 넘치는 사치와 불편함이 대부분이다. 몸에 너무 꽉 끼거나 겨울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없는 의복처럼, 우리는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을 동경하며 좇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의 도시민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 뿐이리라.
<월든>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자연 속으로 가지고 들어갈 최소한의 문명이란 어느 선까지인가. 인류가 얻은 현대 문명의 밝은 부분, 예를 들어 의약품 같은 부분까지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인류 모두가 <월든>같은 삶을 택할 수 있을까. 만약 택한다면 인류의, 그리고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목가적 삶에서도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가능할 것인가. 아니, 과연 기술적 진보는 진짜 진보인 것인가. 인문학적 진보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렇게 시간에 쫓겨 급히 떠오르는대로 책 읽은 뒤 감상이라며 휘갈길 것이 아니라, 좀 더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이레 펴냄, 2004
2011/01/03 - 2011/02/16
알라딘 \6,860 (정가 \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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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한해 마지막을 앞두고 큰 일 하나를 치러냈다. 그 동안 벼르고 별러오던 쇼펜하우어의 저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완독이 바로 그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소개하는 입문서는 두어 권 읽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칸트의 3대 비판서에는 못미치더라도) 거대한 하드커버 속에서 뿜어내는 두께와 사상의 난해함 때문에 읽으면서 몇 번이나 포기할까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특히 이제 더 이상 학생 신분이 아니기에 책 읽는 데 전처럼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 더욱 어려웠다. 매일 출퇴근버스 안에서 몇 장, 어쩌다 일찍 퇴근한 날 집에서 또 몇 장. 이런 식으로 깨알 같이 읽은 끝에 근 석 달만에 결국 완독해낼 수 있었다.
완독은 했지만 완독에 대한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저자가 서문에서 직접 추천했듯이, 이 책이 다루는 '단 하나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할 것 같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이루는 커다란 두 축은 책의 제목에도 나오는 표상과 의지인데, 책의 서두에는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이 두 개념이 중반부를 지나면서 한데 엉키고 설키며 책 속의 공간을 정신없이 오간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도 이미 읽었던 부분을 다시 들춰보거나 아직 읽지 않은 부분을 훑어봐야 할 일이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더 잦았다. 그래도 한 번 완독을 했더니 세부적인 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체계는 흐릿하게나마 감이 온다. 다만 그 형태를 보다 또렷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언제 또 이렇게 두꺼운 인문학 고전을 다시 들춰볼 수 있을만한 시간적인, 또 정신적인 여유가 생길지 알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책의 내용은 우울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도 그럴것이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실체가 아니다.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물자체, 즉 의지가 개별화되어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단지 우리를 둘러싼 세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 또한 하나의 특별한 표상이자 객관화된 의지에 불과하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삶은 마르지 않는 고통의 샘으로 묘사된다. 의욕하면 의욕할수록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잠시 의욕이 충족되면 이번에는 무료함이 밀려들어 다시 우리를 고통을 향해 떠밀고 만다.
이 모든 고리를 끊기 위해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방법은 체념이다. 쇼펜하우어의 체념은 불교의 열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언어가 주는 느낌 탓일까. 불교의 열반은 극단적일 정도의 긍정성을 담고 있는데 반해 쇼펜하우어의 체념은 그보다 더욱 음울하게 느껴진다. 비록 뒤따르는 설명에서 체념이 최상의 선인 이유를 나름의 방법으로 규명하지만 거기에서도 염세적인 의도가 강하게 묻어나기에 책의 결론은 더욱 우울하게만 느껴졌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에서 자살에 대해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규정한다. '삶에의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세계는 허깨비에 불과하고 삶은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어느 누가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덕분에 쇼펜하우어가 얻은 오명 중 하나가 자살옹호자라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객관과 주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매우 인상 깊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변하지 않는 외부 세계(객관)이 존재하고 우리(주관)가 그것을 인식한다는 선후관계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 반대로 주관이 존재하기에 객관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객관과 주관의 순서를 바꾸었을 뿐인데, 이를 토대로 쇼펜하우어는 거대한 의지철학을 피워냈다. 조그만 발상의 전환이 이끌어낸 철학 사유의 깊이를 절감한 예였다.
칸트의 저작을 읽으며 대륙 합리론과 영국 경험론의 기가 막힌 절충에 놀랐다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으면서는 동서양 철학의 결합을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놀랐다. 그의 철학 중 표상이 칸트의 사상을 기반으로 했다면 의지는 그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인도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앞서 얘기한 체념과 열반의 유사성도 그렇고, 물아일체(物我一體)로 이미 표현된 바 있는 의지의 동일성도 그렇다. 인생이 곧 고통이라는 명제는 인도철학이나 불교사상의 기본 바탕을 이룬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동양문화의 영향 아래 있는 우리에게는 그의 철학적 개념들이 다른 서양철학자들에 비해 친숙하게 다가온다.
내가 읽은 번역본은 2009년에 새로 나온 것인데 곽복록 서강대 교수의 1987년 번역본에 비해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옮겨졌다. 그러면서 분량도 많이 늘고 책값도 훌쩍 뛰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께와 내용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본문 중 쉼표의 사용이 너무 잦아 독서의 흐름을 끊는 문제도 있지만 이 거대한 저작을 완역한 수고로움에 비하면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그보다 곽복록 교수의 번역본에는 함께 실려있었던 부록이 빠졌다는 점이 특히 아쉽다. 본문 중 참고자료로 자주 언급되는 <충족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관하여>나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는 다른 번역본이 출간되어 있어 따로 읽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부록은 쇼펜하우어의 칸트 철학 비판이 주내용인만큼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큰 중요성을 가지는 데 반해, 내가 아는 한 곽복록 교수의 번역본을 제외하면 따로 찾아볼 길이 없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2009
2010/09/21 - 2010/12/11
영풍문고 강남점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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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동명 영화를 봤던 덕분에 대충의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화면이 아닌 글을 통해 읽는 <비밀>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건조하면서도 충실한 문체로 써내려간 두 권 짜리 소설 <비밀>은 영화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보다 훨씬 어린 나이로 처음 등장하는 딸 덕분에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소설 속의 시간이 훨씬 길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딸이 겪는 중요한 사건 자체는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영화보다 훨씬 세밀하고도 밀도 있는 묘사는 책이 가진 무한한 공간 덕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의 심리가 때로는 은근히 때로는 직설적으로 드러남으로써 감정을 이입하기에도 쉬웠다.
반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비밀'을 독자에게 내놓는 방식은 별로였다. 추리소설의 예를 들자면, 추리소설의 핵심인 트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는 '그럴 수 밖에 없어야 한다'는 개연성이다. 모든 가능성을 제외하고 남은 단 하나의 진실. 그게 바로 트릭이다. 물론 <비밀>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가 단 하나의 '비밀'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의 트릭처럼 논리에 맞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비밀' 자체가 주는 배신감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어째서 주인공이 '비밀'을 '이런 방법'으로 알아낼 수 밖에 없었냐는 점에는 의문이 남는다.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조금 다른 형식으로 표현된 소설에서 더 큰 실망감을 느꼈다.
내가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이 <백야행>과 <브루투스의 심장> 밖에는 없어서 '이 작가는 원래 그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비밀>의 결말의 배신감은 <브루투스의 심장>의 결말이 주는 허무함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적어도 <브루투스의 심장>의 결말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고 또 결국 그렇게 되었다. 다른 결말을 기대하고 읽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기분은 조금 더럽더라도 결국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다. 그런데 바로 그 논리가 <비밀>에는 없다.
결말 부분 뿐만 아니라 이야기 중간중간마다 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우리와 일본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생소함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물음표를 떨어쳐낼 길이 없어 찝찝했다.
이런 점들이, 소설 중반부까지의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내가 <비밀>을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다.
<비밀> (전 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창해 펴냄, 1999년
2010년 11월 2일부터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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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아마 중학교 때였던 것 같은데, 그때 읽었던 책을 10여년 만에 다시 꺼내들었다. 두뇌의 과부하를 피하려면 가끔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책도 읽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조선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배경으로 한 이우혁 작가의 판타지 소설이다. 왜란이라는 역사적 배경의 큰 흐름은 유지하면서도 곳곳에 채워넣어진 풍부한 상상력이 소설의 재미를 살려준다. 역사를 살펴봄에 있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마다 작가 나름의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주인공 일행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배경을 다져주었다.
한국 고유의 전통 사상을 판타지적으로 재해석한 세계관은 독특한 맛이 있어 좋았다. 우주 팔계의 구성과 각 계의 존재만으로도 몇 권의 소설은 너끈히 더 나올 여지가 있어보인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용 게임으로 만들기에도 좋은 소재 같은데 왜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반면 이야기 중반 이후 먼치킨화된 주인공 일행의 능력은 아무리 판타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게다가 주인공 일행이 워낙 강하다보니 어그러진 천기나 조선의 흥망, 일본의 내부 사정 같은 중요해야 할 소설의 장치들이 중요하지 않게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덕분에 후반으로 갈수록 초중반의 흥미진진함이 쇠하는 점은 아쉽다.
<왜란종결자> (전 6권) 이우혁 지음, 들녘 펴냄, 1998년
2010년 10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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