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책을 안읽었던 건 아닌데 글쓰기를 소홀히 했었다. 덕분에 블로그는 완전히 폐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조금씩은 살려내야 할 것 같아 오랜만에 키보드 글쇠를 두들겨본다.
2008년 5월, 군대에서 자대 배치 후 첫 외출을 부여받았었다. 첫 외출의 목적지는 부대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던 공공도서관이었다. 그때부터 대학 4년 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고전 탐독이 시작됐다.
특히 철학 고전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아직은 동양고전에는 손을 못대고 서양고전만 읽어오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고 키케로,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를 넘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까지 읽었다. 그리고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마주했을 때의 그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읽기는 힘들었다. 한 문장을 몇 시간씩 붙잡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덕분에 모든 사물을 나름의 모델링을 통해 수식과 그래프로 단순화시켜버리던 이 멋진 공학의 관점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칸트와 쇼펜하우어 만큼이나 기대했던 니체에 이르렀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도덕의 계보학>을 읽기 전, 니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니체 입문서가 이 책이었다.
지금까지 서양철학사를 훑어온 과정은 벽돌을 쌓아 건물을 짓는 것과도 같았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서로의 사유를 내세우며 위대한 철학의 신전을 쌓아올려왔다. 마침내 칸트의 시대에 이르러, 그가 신전에 지붕을 씌우고 쇼펜하우어가 벽면에 조각을 함으로써 철학이라는 건축을 완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니체는 그 모든 것들을 깨부수기를 명령한다. 세상에 보편적인 잣대란 없다. 역사 속의 위인들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존경의 대상이며 나아가 파괴의 대상이다. 청출어람. 니체는 그들을 짓밟는 대신 그들보다 한단계 더 성숙한 인간이 되라고 말한다.
철학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자. 철학은 자유로운 학문이다. 하지만, 자유를 추구한다면서도 철학은 이성, 오성, 인식 같은 딱딱한 언어 속에 스스로를 옭아맨 것이 아닐까. 이제는 사유를 둘러싼 저 벽을 허물어내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진일보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 그리고 새로운 인간이 되자. 이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니체로부터 전혀들은 단 하나의 메세지이다.
아직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도덕의 계보학>을 읽지는 않아 뭐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 책 전반에 걸쳐 니체의 사상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 판단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향을 잡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방향타가 될 수 있겠지만, 스스로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생각을 틀에 가둘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읽은 니체는 스스로 찾아가기를 주문하고 있다. 입문서, 그리고 니체를 깨부수고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나귀제를 준비할 것인가. 선택은 나의 몫이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 그린비 펴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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