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연초에 일주일 정도 잡고 읽으려고 골랐던 책인데 읽다보니 너무 오래 걸렸다. 회사일이 쉼 없이 쏟아지던 시기라 출퇴근길 버스에서 대여섯쪽, 퇴근하고 집에서 또 몇 쪽. 그렇게 읽다보니 다 읽는데 한달 반이나 걸렸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그 무엇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책 읽는 시간을 줄여가며 이렇게들 아둥바둥 살고 있을까. 충분한 결혼자금과 노후자금을 저축하는 것, 세계적인 기업의 임원이 되는 것, 많은 특허와 논문을 써서 명예를 얻는 것, 그 무엇도 답은 아니다. 이들은 단지 삶을 위한 수단이며 필요조건일 뿐, 목적이나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실상 내 삶은 분명한 목적의식 없이 수초처럼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가하면 한밤중에도 별조차 볼 수 없는 이 도시는 얼마나 삭막한가. 창 밖을 내다보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 부적절한 것들이 가득 차 있다는 걸 항상 느낀다. 숨을 쉬어도 상쾌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맨발로 흙을 밟아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오랫동안 앓아온 천식과 아토피성 피부염도 전형적인 도시병 중 하나가 아니던가.
도시가 주는 편리함은 사실은 허구며 환상이다. 빛나는 네온사인들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숙면을 방해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문화생활이 편리하다고는 하지만 일에 쫓기다보면 1년에 책 몇 권, 연극 한 작품 감상하기도 쉽지 않다. 식료품 구입이 편리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숨이 끊긴지 오래된 시체들 아니던가.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도시가 줄 수 있는 이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에 도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시 속의 도시민은 단지 도시에 종속되어 있을 뿐인 까닭이다.
<월든>은 도시를 떠나 문명을 내려놓은 삶이 얼마나 충만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월든 호숫가의 정경을 이끼 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묘사하며 목적의식과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소로우의 글에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벅찬 감정을 느낀다. 소로우는 최소한의 문명만으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그리고 문명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자연의 위대함을 말한다.
실상 문명의 빈 자리라는 것도 넘치는 사치와 불편함이 대부분이다. 몸에 너무 꽉 끼거나 겨울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없는 의복처럼, 우리는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을 동경하며 좇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의 도시민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 뿐이리라.
<월든>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자연 속으로 가지고 들어갈 최소한의 문명이란 어느 선까지인가. 인류가 얻은 현대 문명의 밝은 부분, 예를 들어 의약품 같은 부분까지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인류 모두가 <월든>같은 삶을 택할 수 있을까. 만약 택한다면 인류의, 그리고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목가적 삶에서도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가능할 것인가. 아니, 과연 기술적 진보는 진짜 진보인 것인가. 인문학적 진보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렇게 시간에 쫓겨 급히 떠오르는대로 책 읽은 뒤 감상이라며 휘갈길 것이 아니라, 좀 더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이레 펴냄, 2004
2011/01/03 - 2011/02/16
알라딘 \6,860 (정가 \9,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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